자기 자신을 통제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통제력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방종? 중독? 망발? 과식? 과욕? 이러한 단어에서 봤을 때 통제력은 지나친 욕구의 반대편에 서 있는 말인듯 하다. 개인적으로 선입견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단 한가지 선입견을 가진게 있다. 너무 살찐 사람은 먹을 것에 대한 자제력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먹지 않고서는 살을 찔 수 없으므로.. 물론 여기서 말하는건 적당히 보기 좋게 찐게 아니라 살이 너무 쪄서 흘러내릴 정도가 된 사람을 말한다.

예로부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동양사상에서 중요하게 가르쳐온 덕목으로 보인다.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넘치는 것은 모자라니만 못하다." 불교나 도교 또한 그런 점을 중요시하고 극도로 자신을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잠자는 시간에서부터, 먹을 것, 입을 것 등등 자신의 욕망을 극도로 절제하고 살았다. 이런 소비의 시대에는 이제 낡은 말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하지만 옛날의 대가족 중심과 마을 중심의 사회와는 달리 개인을 야단쳐주고 지도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같이 생활하다보면 생활 패턴이 맞물리는게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지켜야 하는 삶의 룰이 있고, 자신의 역할이 주어지지만, 점차 이젠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남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껴지는 그런 세대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도 통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제멋대로 살아온 느낌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에는 완전히 꽉 짜인 틀안에서 살아야 했다. 그 안에서 나만의 무얼 찾는다고 한들 사실 극히 제한된 틀 안에서 조금씩 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지에서 혼자 대학을 다니고, 군생활을 하고,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의 혼자 살았다. 물론 기숙사에서 산 적도 있고, 하숙을 한 적도 있지만 사실 그건 제약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삶속에서 정말 마음대로 살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썩 바람직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젠 집이 이사와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왠지 정신도 들고 사람 사는 것 같다. 혼자 살면서도 정신차리고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왠지 난 그런 타입이 아닌 듯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면 되겠지만 어누 순간 보면 정신을 놓고 살고 있는.. 그런 나다.

통제력을 잃은 쥐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외국에서 실험한 바에 의하면 통제력을 잃은 쥐는 정상적인 쥐에 비해서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한다. 폭식, 과식은 비만과 성인병을 부르고, 장기를 약화시켜서 수명을 단축시킨다는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밥을 적게 드세요라고 늘 쫓아다니면서 조언해주고, 간식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려주는 사람이 없는 이상 매번 상기시키면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커피는 필수적인 음료수고 어디든 먹을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먹을것 뿐이겠는가? 리니지를 하다가 죽은 사람 이야기는 한 때 흔한 기삿거리였다. 도박에 빠진 사람, 주식에 빠진 사람, 종교에 빠진 사람 등등.. 그리고 이 사회는 한가지에 미쳐야 성공한다며 한가지에 미치기를 장려하고 있다. 나는 한가지에 미쳐야 성공한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직경 5cm짜리 각목을 아무리 높게 일자로 쌓아보라. 그게 쌓일것 같은가? 버텨낼 것 같은가? 공부를 할 때도 죽어라고 공부만 파지만 성적이 오히려 안나오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이제서야 사고와 독서 등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것들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불과 십몇년전만 해도 그런건 공부앞에서는 다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학력고사가 그대로 갔으면 암기가 지금도 우세할테지만 그나마 수능이라는 과목이 나와서 조금 나아진 셈이다. 뭐 그래와뱌 이제는 다들 영어만 하고 있지만..

통제력의 본질

결국 통제력의 본질은 자신을 돌이켜 보는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나치다고 느낄 때 그만 둘 수 있도록.. 즉 거꾸로 말하면 지나치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을 놓아버리면 안되고 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그냥 무조건 참는 것은 소극적인 통제이고 고통이다. 참 힘든 이야기이다. 보다 나은 의지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즉 자신을 합당하게 설득할 수 있는 적극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온전한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서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느끼고 있고, 자신의 한계와 선을 정하고 지나쳐서 힘을 다 써버리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적절하게 자신을 조절하면서 훈련하면 자신이 강해진다. 집중과 요령이 생기면 적은 힘을 들이고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고, 본질을 뚫어볼 수 있으면 무얼 하더라도 자신감이 생긴다. 다른 곳에서 생긴 요령을 응용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에 통달하면 다른 것도 통달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엔진 성능은 요기까지인데 아무리 올려봐야 공회전하거나 엔진은 터질 뿐이다. 정신력으로 버틴다고 하지만.. 엔진이 터지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람은 버틸 수 있다고? 무리한건 나중에 쌓여서 그걸 털어내는데 오히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걸 잊지 말자.

WRITTEN BY
가별이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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