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과 11월의 첫날을 이용하여 여행을 다녀왔다. 대전에서 경주에 도착, 선덕 여왕릉을 보고 정자에서 주전으로 이어지는 동해 라인을 타고 달린 후에 양산에 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중간에 개인적으로 일산 해수욕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사실 원래 살던 고향에 잠깐 시간을 내서 들려온 셈이다.

선덕여왕릉을 찾아가던 중, 네비에주소를 잘못 입력한 것 덕분에 구경할 수 있었던 석탑. 돌을 주물러서 저정도의 곡선을 살려낸 것은 실로 놀랍기만 하다. 부서진 위쪽은 쇠로 된 첨탑으로 녹슬어 사라진듯하다. 철보다 돌이 시간에 대해서 강한 것이겠지. 천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탑의 모양은 여전히 선명하기만하다.

 

 

 

추수할 때가 다가온, 무르익은 경주의 들판이다.

선덕 여왕릉이다. 갔다가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번째로 선덕 여왕릉은 낮은 산의 정상에 만들어져 있었다. 묘는 산의 정상에 거의 쓰지 않는다. 그건 다른 왕들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두번째로 선덕 여왕릉을 중심으로 거대한 적송림이 형성되어 있다. 모양이 거의 원형이 가까운데, 가만 보고 있으면 아마도 이게 인의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이다.

세번째로 적송이 이상하게 휘어져 있다. 통영에서 보았을 때 비해서 너무 심하게 나무가 휘어져 있는데 그것도 특정 방향을 향해서 휘어져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아무튼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김덕만이라는 걸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묘비.

선덕 여왕릉을 둘러싼 적송림이다. 이상할 정도로 바닥에 풀이 없고 적송만 자라고 있다. 그리고 모양이 기괴하게 휘어져 있다.

 

너무나 아름답게 물든 경주의 산. 도로만 뚫려 있고 사람이 거주하지를 않다보니 산이 너무 멋지게 물들어 있었다. 경치는 정말 최고인 듯.. 경상도가 볼 것이 없다고 하지만 글쎄.. 경주 하나만 봐도 대적할 곳이 얼마나 있을까?

 

감은사지 삼층 석탑이다. 근처에 있는 문무왕릉과 관계가 있는 곳이다.

수령이 족히 천년은 넘어보이는 나무.

문무왕릉이다. 사진에서 보이기에는 하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4개의 바위가 가운데가 갈라져 있고 십자모양으로 갈라진 정중앙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용이 되어 우리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 하지만 용은 우리나라의 상서로운 동물이 아니다. 용은 중국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이다.

 

동해안은 모래백사장보다는 바위 해안이 많다. 늘 바다 수평선을 보고 있다보면.. 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활기찬 회센터. 4키로 좀 넘는 회를 7만5천원을 주고 떴다. 도시락팩으로 8팩을 떠서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 괴상어, 잡어 (쥐치), 아나고(붕장어), 생오징어

 

토요일날 묵은 팬션의 테라스이다. 테라스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 자는 방문에서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팬션 앞의 풍경들..


불꽃처럼 살다가신 방어진 성당의 첫 주임신부님. 신부님은 30살에 처음으로 방어진 성당에 부임하셔서 33살에 교통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마지막까지 방어진에서 함께 하셨다. 총알 택시를 타고 달리다가 사고가 나셨는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셨는지 택시 기사를 먼저 수술하시라고 하셔서 살리고, 자신은 돌아가셨다. 13년만에 찾은 울산에서 운좋게 기일임을 알아서 양산 성직자 묘지에서 술 한잔 올렸다. 올해 내 나이 33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통한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방어진 성당에서 난 초대 고등부 회장이었고 신부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신부님을 거울처럼 비춰보면 지난 방황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는 많은 후회가 든다. 그렇게 길을 돌아서 올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느님께서는 애초에 손가락으로 가야할 길을 가르키고 계셨지만 나는 내 식대로 살아보겠다고 멋대로 살아왔다. 하느님께서 나를 시험하고 계신 것이라고 여기면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WRITTEN BY
가별이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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