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에 해당하는 글 1건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던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체스 기사에 대한 소설이다. 판타지는 아닌 역사에 있던 전설적인 체스 기사에 대한 사실은 등장하지만 그것은 배경이 될 뿐, 내용 자체는 픽션에 가깝다.

책을 읽는 동안 드는 느낌은 기묘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흐릿흐릿한 느낌이 아니라 선명하게 잡히는 이야기였고, 애잔하고 슬프지만 따뜻한 이야기고, 기쁘지만 비극적인 그런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만화의 느낌이어서 혹시 이 작품이 만화나 애니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미지화 되어서 그려져 있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바둑, 장기 등을 대상으로 수준 높고 섬세한 만화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매우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읽었던, 그리고 지금도 연재중인 "허니와 클로버"의 작가가 쓴 3월의 라이온이 있다. 3월의 라이온에서도 느껴지는 그런 애잔한 느낌은 이 책과 코드는 다르지만 역시 동류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바둑이나 체스를 생업으로 하여 먹고 살기가 어렵다. 머리와 감각이 뛰어나면서도, 이에 입문해야 하는 길이 독특하며, 그걸 생업으로 삼아야 하는 과정이 결국은 슬픈 이유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이는 영광에 비해 승부의 과정에서 본인이 겪여야 하는 고통이 그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에서 나오는 고양이는 주인공에게 체스를 가르쳐준 퇴직 버스기자이자 운송회사의 잡역부였던 마스터가 키우던 폰이라는 고양이이기도 하며, 알레힌이라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체스 기사가 체스를 두었을 때 안았던 고양이, 그리고 알레힌을 본따 만들어진 체스 인형인 리틀 알레힌이 안고 있는 고양이이기도 하다.

코끼리는 주인공이 어렸을 적 놀러가던 백화점의 옥상에서 죽은 인디라라는 코끼리이자 체스의 말인 비숍의 원형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인디라라는 코끼리는 백화점 옥삼에 공연을 위해 왔지만, 사정으로 인해 옥상에서 머물러 있던 중 너무 커져서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갈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평생을 백화점 옥상에서 마치게 되었던 코끼리로 주인공은 이 코끼리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코끼리를 기념한 자리에 서서 코끼리를 대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주인공이 체스를 둘 때 비숍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주인공은 체스를 두고 그 다음 체스를 둘 때까지 테이블 밑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습관을 마스터에게 체스를 배우는 동안에 가지게 되었고, 이 습관과 더불어 태어났을 때 붙어있었던 입술을 메스로 가르고, 정강이 피부를 이식했기에 털이 자라는 입술이라는 기묘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주인공에게 사람들에게 나설 필요 없이 체스 인형 속에 숨어서 사람들과 체스를 대결해 줄 수 있겠냐는 제의가 들어왔고, 이를 수락한 주인공은 알레힌을 본딴 리틀 알레힌이라는 체스 인형속에서, 본인 또한 리틀 알레힌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 처음은 비공개 체스 클럽에서, 두번째는 은퇴한 체스 연맹 회원들의 요양 병원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람들과 체스를 통해 상대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이름을 소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소년으로 불리고 뒤에는 리틀 알레힌으로 불리게 된다. 매끄러운 글의 구성을 쫓다보면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상을 살았다기보다는 체스의 세상속에서 상대방과 어울려 체스 속을 잠수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갔다.


책은 쉽게 읽히고 내용은 흥미롭다. 책을 읽어갈 수록 내용이 정리되지 않고, 소년의 미래가 투명하게 비치지 않기에,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예감할 수 밖에 없지만, 그 길외에 마땅한 길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그러한 결말이었다. 소설로서의 내용도 좋고, 흐름도 괜찮지만 가끔 흐름이 끊어지거나, 이미지를 지나치게 강하게 넣고자 하거나, 암시들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강한 암시를 주면 독자는 그 암시를 염두에 두고 읽게 되는데, 그 내용이 생각외로 시시했다거나, 납득을 할만큼 묘사를 해내지 못했다거나, 오히려 암시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느낌들이 눈에 자꾸 걸렸다.

여러가지 이미지를 그리고 이를 중첩하고 연관짓는 작가로서의 기술은 정말 최고 수준이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 사이에서 판타지도 리얼도 아닌 중간선을 서려다 보니 부풀어 오르던 풍선이 시들어졌달까? 작가는 그가 그려낸 기보의 아름다움을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은 수식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그걸 동감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그 부분은 체스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공감할 수 있는 교차점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를 들면 무협지에서 대결할 때 최소한 초식명이라도 말해주거나, 흐름이라도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내용은 만들어 낼 수가 없으되, 그 아름다움만 묘사해야 하는 그러한 압박감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내용을 쓰기에는 체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거나, 어쩌면 책을 쓰는데 시간이 좀 더 부족했던 지도 모른다. 오랜 퇴고와 고심을 통해서 차라리 방해가 될만한 부분은 지워버리고 새로 연결해야 했겠지만, 전체적으로 흐름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다시 쓰다시피 해서 고쳐야 한다는 그러한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그렇게 하면 원래의 이미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 수고가 대단해야 핬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전작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주는 느낌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그러는게 낫지 않았을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평범하게 좋은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면, 이 책 또한 평범한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 지었는데, 그 마무리가 왠지 아쉬워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펴들고 몇장 읽고 있다보면, 어느새 더더 읽고 싶어지는 그런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 또한 교보문고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우연찮게 집어들고 읽다가 책을 사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WRITTEN BY
가별이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