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린 연막 수류탄'에 해당하는 글 1건

저는 경기도에 있었던 한 정비근무대에서 군무를 했습니다. 그 중 기억나는 황당한 일 두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첫번째 있었던 일은 비가 오던 어느 여름 새벽날이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막사가 2군대로 나눠져 있었는데 제가 있던 곳이 아닌 다른 쪽의 막사에 비가 너무 많이 온 관계로 산사태가 나서 막사를 덮쳐 버린 겁니다. 새벽에 산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전 부대원이 달라붙어서 복구 작업에 나섰는데요 흙이 무너져 내린거니 작업량이 꽤나 많았습니다. 근데 한참 파다보니 왠 걸.. 엄청 큰 총알이 나오는겁니다. MG50 탄환이더군요. 그 이후에도 M60 탄환등 총알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탄통도 나오더군요. 알고보니 예전에 우리 부대가 있던 곳이 미군 부대가 주둔하던 곳이어서 걔네가 묻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들리는 얘기로는 우리 부대 뒷산에 M48 전차도 묻혀있다고 하더라구요. 암튼 오 신기하다 그러면서 막 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파다보니 비누같이 네모난 것들이 우루루 나오더군요.

Image:Eod2.jpg

저기 아래에 깔려있는 마치 비누 같은게 보이시죠? 바로 저겁니다. 고참들은 신나서 (그 때 제가 일병때였습니다.) 오우 이건 고형 연료닷~ 라면 끓여 먹어야겠다~ 이러면서 아주 신나하더군요. 고형 연료는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껍데기를 까보면 색깔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하게 생겼어요. 다만 크기가 좀 다릅니다. 왜냐면 일회용이라서 반합에 국 데우거나 라면 하나 끓여먹으면 딱 될 정도의 양만 있으면 되기에 작거든요.

암튼 그렇게 한참 떠들고 있는데 중대장이 우리 작업하는데 와서 보더니 우리 손에 들린걸 보고 기겁을 한겁니다. 너희 미쳤냐면서~ 얼른 회수해가더군요. 나중에 정체를 알고보니 그건 고형 연료가 아니라 C-4 였던 겁니다. C-4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링크를 붙여 두겠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C-4_(explosive)

암튼 이런 위험한 물질 이었던 거죠. 설명에는 폭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거죠. 암튼 우리는 라면 하나 끓여먹으려고 했다가 우리 부대 폭삭 날려먹고 몽땅 다 죽을 뻔 했다는 그런 얘기죠.


두번째 얘기는 어느날 갑자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데 갑자기 부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이러고 있는데 부대에서 폭발물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나중에서야 알고보니 탄약고 근처에서 "백린 연막 수류탄"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백린 연막 수류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적어보겠습니다. 적린은 우리가 흔히 보는 성냥의 머리인 빨간 부분이 적린입니다. 발화점이 낮아서 불을 붙이기 쉽죠. 공동묘지에서 흔히 보인다는 도깨비불이나 귀신불은 인체내의 인이 묘지를 빠져나왔을 때 공기중의 마찰로 자동 발화하여 불이 붙은 것을 말한다고 할 정도로 인의 발화 점은 낮습니다. 백린은 발화점이 100도 근처로 극히 낮은데 이 온도는 상온에서 마찰만 해도 불이 붙을 정도로 극도로 낮은 온도입니다. 이러한 백린을 수류탄 안에 채워넣어서 수류탄이 터지면 백린이 날아갑니다.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사용의 제한이 있습니다만 일단 인체에 달라붙게 되면 백린 자체가 소멸할때까지 타들어갑니다. 베트남전에서의 보고에 의하면 뼈까지 타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제거법이라고는 절대 씻거나 비비면 안되고 (마찰에 의해서 불이 붙고 그럼 죽는겁니다.) 대검으로 하나하나 다 떼어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암튼 그런 무시무시한건데 갑자기 생각이 나는겁니다. 오전에 내가 탄약고 올라가서 경계 근무 설 때 깡통 하나가 보이길래 발로 차고 굴리고 놀았다는것이요... 그게.. 그거였던겁니다. 오래되어서 다행히도 백린이 누출되지 않았지만 그게 누출되어서 저에게 닿았거나 탄약고에 달라붙었으면 전 여기 없는겁니다..


군대 안 다녀오신 분들은 이런 얘기가 좀 낯설겠지만 그만큼 군대에서 몇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당한셈이죠.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참 다행이고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


WRITTEN BY
가별이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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